- 찰나의 우울감을 다스리는 방법.

대단할 게 뭐 있을까. 그냥 그 찰나를 곱씹지만 않으면 된다. 스스로에게 근거를 따지려 들지 말고,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기면 훌륭한 거다. 하지만 가끔은 그게 어려웠기 때문에, 곱씹는 날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곱씹지 않으면 된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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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현실적인 꿈을 꾼 후 자주 몽롱한 망상에 잠겨들곤 했다. 어제는 덩치가 아주 큰 남자를 손에 잡히는 걸로 냅다 쑤셔 박아 버리는 꿈을 꿨다. 그러나 그 남자는 쉽게 죽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여러 번 찌르고 또 찌른 후에 죽었을까? 확인하는 게 무서워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다른 방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남자는 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일그러진 몸뚱이로 멀쩡한 옷을 주섬주섬 입은 채로 힘겹게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오늘은 나의 오른쪽 다리의 살을 벗겨내 수술하는 꿈을 꿨다. 허벅지 위로 조그맣게 잡힌 물집을 터뜨리다가 가죽을 벗겨내고 푸른색을 띈 근육을 잘라내고, 이어 붙이더니 다시 가죽을 덮고 꼬매는 수술이었다. 아무런 통증이 없었지만 나는 아픈 척, 한쪽 다리로만 콩콩 뛰며 돌아다녔다.

그런 비현실적인 꿈의 내용이 너무 매력있게 느껴졌다. 잠에서 깨고 정신도 다 깨어난 상태더라도 꿈을 이어 꾸고 싶어 다시 눈을 감은 적이 많다. 그런 날엔 유독 찰나의 우울감이 자주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음 날인 오늘은 로그라이크 게임 같은 꿈을 꿨다.

꿈의 도입부는 높은 건물의 가장 꼭대기층에서 펼쳐졌다. 이상한 사람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의 행색을 살피자마자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등을 떠밀며 어서 아래로 내려가라며 소리쳤다. 코를 쥐어감싸고 입을 꾹 틀어막은 채 그들을 뒤따랐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상한 사람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층 한층 내려갈수록 우리를 뒤따르거나 앞지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병에 걸린 이들이 자꾸만 출몰하자 나는 맞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죽은 건지도 모른 채 다시 맨 꼭대기층에서 새로운 몸을 얻어 또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춰둔 시간에 일어나면 마지막으로 꿨던 꿈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꿈을 더 꾸고 싶어 눈을 감으면 또 새로운 꿈이, 또 또 새로운 꿈이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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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적인 말은 아니다. 나는 공부머리가 없고, 복잡하고 예술적인 내용을 싫어한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나를 낮춰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냥 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똑똑하고 멋있어 보이고. 예술적인 매체들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저 신기하다. 대단해 보이고. 

내가 복잡한 걸 싫어해서. 예술을 갈망하면서도 예술은 너무 지루해해서 발전이 없는 건가.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창작의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할 위인은 못 되는 걸까. 자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