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감정을 너무 버거워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수조안을 가득 메운 찰랑이는 감성과 그걸 비추는 수많은 빛,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가끔은 우주가 되어 반짝이는 은하수를 담아내고 또 가끔은 새파란 하늘이 되어 두둥실 떠다니고 자유롭게 비행하다가 가끔 벽에 부딪히는 그 일련의 맘 속 얘기들. 그것들을 반짝이는 두 눈으로 쏟아내는 모습이 너무 버거웠나보다. 감성적이다, 오글거린다 그런 말들로 치부하고 싶진 않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맨눈으로 태양을 올려다보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눈을 감게 되고 시선을 피하게 되더라. 메마르고 외로운 내 수조와 비교되는 것 같았다. 때문에 슬퍼지거나, 나를 안타까워 하거나, 가여이 여기진 않지만 그냥 마냥 부러웠다. 그 수조가. 멀리서 바라보게만 되는 그 작은 수조가.

가끔 일렁이는 물결을 비추는 빛이 되고, 그 안에 풍덩 들어가서 은하수를 이루는 별도 되어보고, 하늘이 만들어 낸 흰 구름 사이를 지나가며 비행해도 될 일임에도, 그 감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 수조에 들어갔어도 될 반짝임들은 내 수조에, 반짝이기만 하는 모래알들이 되어 툭툭 쌓였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하나를 어렵게 찾아내어 또 그 바늘로 내 모래알들 사이를 쿡쿡 찔러본다. 물 한방울이라도 샘솟을까봐. 그러나 샘솟자마자 모래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춰버리곤 했다. 이 수조에 굳이 물이 있을 필요가 있어? 부는 바람에 지표면의 모래 알갱이 몇 알을 나부끼기만 할 뿐인 내 수조가 그렇게 말하더라. 그러니 남의 안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는 남들의 수조에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두렵고 무서워서 그랬다. 용기가 안 났다. 나를 물들일 그 파란 감성이, 까마득한 우주가, 새파란 하늘이. 너무나도 겁나서 그랬다.

그의 수조를 질투없이 사랑하고, 사랑함을 고백하는 자들이 부러웠다. 난 그 수조를 보면, 다다르지 못할 내 자신과 그를 사랑하면서도 질투하는 내 자신만이 보였다. 반짝이게 해달라고 쉽게 내뱉는 말과 기꺼이 제 몸을 빠트려 반짝이길 도와주는 사랑이 부러웠다. 그러다 결국엔 사랑이란 뭘까. 물음의 기저로 향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든 답을 알아내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형체를 찾아내려고 해서였다. 수조를 메운 찰랑이는 감성도, 까마득한 우주를 펼치는 것도, 하늘이 되는 것도 모두 사랑에서 기반한 것일텐데 그 물은 어떻게 담아내는 거죠? 우주를 어디로부터 가져 온건가요? 어떻게 그런 파란색을 비춰낼 수 있는 거죠? 답할 수 없는 질문만 쏘아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사랑에 기반한 모든 감정이, 감성이, 애정 어린 눈들이. 그저 너무 버겁고 또 어려웠기에.